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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찰스 2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27 [요트의 역사] - 18세기, 왕의 요트와 왕의 경기
  2. 2009/03/31 [요트의 역사] - 요트의 시작


18세기 영국 왕의 요트는
찰스 2세의 스포티한 개인의 배들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은 배들에 가까웠고,
해국의 지휘아래 함대를 재검토하는 것과 같은
공식적 임무에 종종 이용되었습니다.


로얄 캐롤라인은 1749년 뎁트포드에서 제조되었으며
7.5m의 선폭과 함께
용골을 따라 22m와 무게 232ton이었습니다.
ketch(쌍돛대 범선의 일종)라 칭하기도 하지만,
3개의 돛대와 가로돛이 있었습니다.



로얄 캐롤라인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qkrghdtlr71/14423849



로얄 캐롤라인의 항해 중에는 조지 3세의 신부가 되었던 샤롯테(Charlotte) 공주를
맞이하러 독일에 간 여행도 있었습니다.



- 로얄 사브린은 무게 350 ton으로 제조되었으며,
마지막 왕의 요트 로얄 조지는 1817년 항해에 이용하기 위해 제조되었지만,
1843년 초기 빅토리아와 알버트에 의해 패달 증기선으로 교체되었습니다.

특히 1842년 런던에서 스코틀랜드까지 여왕이 승선했던
저속항해 후 증기에 의한 항해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처럼 왕의 요트는 공식적 사업과 왕실 휴일,
때때로 요트경주나 대회에 참가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 18세기 왕의 경기에 관한 기록들 *


1749년 웨일스의 왕자(후의 조지 3세),
런던의 그리니치에서 템즈 강에 있는 노아 등대선까지의
왕복경주에 임했던 12척의 요트와 유람선에게 우승컵을 건네줌.

"그 강은 요트와 갤리선, 그리고 작은 배들로 덮여진 것처럼보였다"
1749년 8월 더잰틀맨즈매거진

1775년 7월 11일 목요일, 조지 3세의 형 컴벌랜드의 공작을 위한 경기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푸트니 다리까지의 왕복으로
2~5톤의 짐을 싣고 일정하게 런던 다리를 벗어남.
도착한 20척의 배들 중 우승컵 오로라(Aurora)는 Mr Parks가 탔으며,
2위 Fly 의 수상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클럽은 1782년까지 이어지고 후에 영국의 첫 번재 요트클럽이 됩니다.

* 요트경기 후 상의 수여식 *

이 조직(위의 말하는 요트 클럽)은 듀크컵의 매 경주의 마지막 의식에 의해 보여졌습니다.

그 의식의 과정을 잠시 살펴보면

먼저, 함대의 요트에는 제독이 승선하고
요트 선장들(요트의 주인들)은 컴벌랜드의 공작이
금박을 입힌 거룻배에 나타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의 요트에 승선했습니다.

승리자들은 제독이 불러내어 공작에게 소개되고
우승컵에 담긴 클라레 와인을 마시고 수여받게 됩니다.
그 후 모든 함대는 복스홀 다리의 남쪽 끝에 있는 정원 쪽으로 항해 했는데,
그 당시 이 정원은 컴벌랜드 정원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다음은 19세기로 넘어갑니다.!




출처 : "요트항해입문", 김천중, 2008, 백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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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란필도

요트에 기원과 그 발전에 대해 알아봅시다.!

요트의 역사를 찾아 역사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기록상으로 찾을 수 있는 요트의 시작은 17세기 부터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17세기

'요트'는 네델란드 말인 야그헨(jaghen)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이는 육지, 바다의 관계없이 뒤쫓거나 추격하다는 의미
사냥할때의 동작을 나타내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16세기와 17세기의 강한 해상국가였던 네덜란드였기때문에
이 나라에서 요트가 비롯되었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죠.

이 시대의 '요트'는 네덜란드 해군에 소속되어 업무를 수행하는
작은 쾌속선이었으며 운송수단, 공무원이나 장교의 심부름을 수행하였습니다.

네덜란드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인도 주변, 그리고 극동지역 등
도처의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유럽에서 가장 번영하는 국가였습니다.
이런 활발한 경제 활동은 대다수 사람들을 바다와 친밀하게 연관시켰으며,
점차 운송수단의 목적과 레져를 위한 목적이 병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놀이를 위한 요트의 첫 번째 예는 영국의 찰스 2세라고 합니다.
아버지 찰스 1세의 처형으로 네덜란드에 망명하는 동안
수로로 여행하는 네덜란드의 풍습을 배웠고
이후 왕위로 복귀한 후에 브레다에서 델프트까지의 항로
요트여행의 첫번째 항로로 정했다고 합니다.

런던으로 복귀한 후 찰스 2세는
로테르담에 있는 더치이스트인디아회사에서 요트 메리(Mary)를 선물받게 됩니다.
최초에는 네덜란드 전통에 따라 주돛(메인세일)의 슬루프(sloop)형 요트였는데
1662년 재장비하는 동안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사형 삭구를 다시 갖추게 되었습니다.

"멋지게 꾸며지고 금도금된 선실 내부를 갖고 있으며, 최고 예술가 몇몇이 그 범선의 안과 밖을 미화시키기 위해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품을 만드는데 종사되었다" - 당시 메리에 대한 기록


-네덜란드의 요트(왼), 영국의 요트(오른)


메리호는 영국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영국의 선박제조업자 피터와 크리스토퍼 펫은
메리호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배의 제작을 시도합니다.

해서 탄생한 것이
크리스토퍼 펫의 캐더린 (찰스 2세의 신부가 될 포르투갈의 공주 이름에서 따옴)
피터 펫의 (찰스 2세의 형제 요크 공장의 부인 이름에서 따옴)
이 탄생합니다.

후에 베잔(Bezan)이라는 요트가 영국에 오면서
영국은 4척의 요트를 가지게 되는데 이 요트함대가 최초의 요트 경기를 생겨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놀이를 위해
왕은 케더린에, 공작은 앤에 탑승하여
2척의 요트가 서로 경주를 했었다고 합니다.

- 베잔 (Bezan)


이 후 펫 형제와 소규모 제조업자들에 의해 영국에서 전부 26척의 요트들이 제조되었고,
이 요트들은 영국 근해에 적합하게 건조되어 네덜란드 범선보다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은 18세기로 넘어가보아요~^-^



출처 : "요트항해입문", 김천중, 2008, 백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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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란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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