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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 왕의 요트는
찰스 2세의 스포티한 개인의 배들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은 배들에 가까웠고,
해국의 지휘아래 함대를 재검토하는 것과 같은
공식적 임무에 종종 이용되었습니다.


로얄 캐롤라인은 1749년 뎁트포드에서 제조되었으며
7.5m의 선폭과 함께
용골을 따라 22m와 무게 232ton이었습니다.
ketch(쌍돛대 범선의 일종)라 칭하기도 하지만,
3개의 돛대와 가로돛이 있었습니다.



로얄 캐롤라인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qkrghdtlr71/14423849



로얄 캐롤라인의 항해 중에는 조지 3세의 신부가 되었던 샤롯테(Charlotte) 공주를
맞이하러 독일에 간 여행도 있었습니다.



- 로얄 사브린은 무게 350 ton으로 제조되었으며,
마지막 왕의 요트 로얄 조지는 1817년 항해에 이용하기 위해 제조되었지만,
1843년 초기 빅토리아와 알버트에 의해 패달 증기선으로 교체되었습니다.

특히 1842년 런던에서 스코틀랜드까지 여왕이 승선했던
저속항해 후 증기에 의한 항해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처럼 왕의 요트는 공식적 사업과 왕실 휴일,
때때로 요트경주나 대회에 참가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 18세기 왕의 경기에 관한 기록들 *


1749년 웨일스의 왕자(후의 조지 3세),
런던의 그리니치에서 템즈 강에 있는 노아 등대선까지의
왕복경주에 임했던 12척의 요트와 유람선에게 우승컵을 건네줌.

"그 강은 요트와 갤리선, 그리고 작은 배들로 덮여진 것처럼보였다"
1749년 8월 더잰틀맨즈매거진

1775년 7월 11일 목요일, 조지 3세의 형 컴벌랜드의 공작을 위한 경기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푸트니 다리까지의 왕복으로
2~5톤의 짐을 싣고 일정하게 런던 다리를 벗어남.
도착한 20척의 배들 중 우승컵 오로라(Aurora)는 Mr Parks가 탔으며,
2위 Fly 의 수상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클럽은 1782년까지 이어지고 후에 영국의 첫 번재 요트클럽이 됩니다.

* 요트경기 후 상의 수여식 *

이 조직(위의 말하는 요트 클럽)은 듀크컵의 매 경주의 마지막 의식에 의해 보여졌습니다.

그 의식의 과정을 잠시 살펴보면

먼저, 함대의 요트에는 제독이 승선하고
요트 선장들(요트의 주인들)은 컴벌랜드의 공작이
금박을 입힌 거룻배에 나타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의 요트에 승선했습니다.

승리자들은 제독이 불러내어 공작에게 소개되고
우승컵에 담긴 클라레 와인을 마시고 수여받게 됩니다.
그 후 모든 함대는 복스홀 다리의 남쪽 끝에 있는 정원 쪽으로 항해 했는데,
그 당시 이 정원은 컴벌랜드 정원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다음은 19세기로 넘어갑니다.!




출처 : "요트항해입문", 김천중, 2008, 백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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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불란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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